2024 Ephesus, Türkiye

2024. 7. 15. 16:07Travel/유럽

에베소

신약 성서에 에베소로 표기된 에페소스 (Ephesus, 그리스어: Έφεσος, 튀르키예어: Efes)는 서부 소아시아의 에게해 연안 (현재의 튀르키예 셀추크)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 의해 BC 9세기에 건립된 식민도시다. 오랜 식민지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에페소스는 실크로드의 마지막 육로와 해상을 연결시키는 지리적 중요성 때문에 상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BC 6세기에 세워진 거대한 아르테미스 신전과 로마 제국 시대, 제2의 도시라는 별명에 걸맞게 세워진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로마식 건축물인 도미티아누스 신전(1세기)으로도 유명하다. 지금도 당시 세계 3대 도서관의 하나인 셀수스 도서관의 파사드가 건재하다. 이곳은 바울이 강론했던 두란노 서원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신약 성서를 보면 바울과 에베소는 깊은 연관이 있다. 바울은 아테네 아레오바고의 설교를 마치고 고린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처음 에베소를 방문한다 (행18:18-19). 전도를 하며 2년여 강론을 펼치고 병을 고치고 상인들과 마찰이 빚어지기도 하고 감옥살이를 하기도 하는 등 그의 전도 여행 중에서는 꽤 오랜동안 머물며 활동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내용은 우리에게 에베소 방문에 대한 적쟎은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남쪽 입구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로마사람들이 수로 건축에 사용했던 흙 파이프 배수관 더미를 뒤로하고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집에 새겨진 상징, 수레모양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종종 기독교인들이 사용하였던 물고기ixthus 표식과 다르게 사용된 것이다. 그런 표식을 통해 사람들은 서로의 믿음과 신뢰를 교류했던 것같다. 왼쪽으로 보이는 공터는 사실 장터였다고 한다. 지금이야 자동차로 남쪽 입구로 들어 오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고대 에베소를 들어오는 길은 바다로 연결된 북쪽 항구였을 터인데  그곳으로 들어오면 가장 먼곳에 시장이 형성되었으니 가난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장소가 되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비탈진 길을 걸어 내려가며 이곳의 좌우로는 많은 상점들이 있었던 곳으로 바실리카 스토아Basilica Stoa라 불렸다. 바실리카는 로마시대에 법정이나 상업거래소, 집회장으로 사용된 곳이고 스토아는 그리스 아고라 주위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어 시민들이 편히 사용하는 장소였다. 바실리카 뒤로 작은 원형극장처럼 생긴 오데온Odeon이 있다. 1,500 여명을 수용할수 있는 이곳엔 두가지 기능이 있었는데 입법등 정치적 기능을 하는 500인회 불레Boules나 원로들the Senate의 집회 장소와 노래나 음악공연, 또는 시 경연을 하는 공연 장소였다. 오디오라는 영어 단어의 기원이 된 곳이기도 하다.  끝 사진은 공중화장실 변기의 모습인데 물로 정화를 했던 로마인들의 기술이 꽤나 앞선 것을 알수 있다.

 

서기 135년에 세워진 셀수스 도서관Library of Celsus에는 12,000권의 양피지로 만든 두루말이 책이 있었는데 당시 지적 갈망/과시때문에 배들이 책을 싣고 들어 오면 이를 복사해서 소장했다. 내부는 습기를 방지하기 위해 이중벽으로 통풍이 잘되도록 설계했다. 전면 파사드에 세개의 출구 옆 네개의 여성 부조는 지혜(Sophia), 미덕(Arete), 지성(Ennoia), 지식(Episteme)을 상징한다. 소장 두루마리 책들은 262년 고트goths의 침략때 불에 타 소실되고 도서관은 파괴었다.

그 오른 쪽에는 아래 아고라agora로 이어지는 두개의 석문이 있는데 아우구스투스의 노예였던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가 자유인이 되어 많은 부를 쌓게되자 황제의 사위 아우구스투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기 40년에 석문을 지어 바쳤다고 한다. 문을 지나 나가면 광장으로 이어진다.

 

BC 3세기 헬레니즘 시대에 시작되어 건축된 원형극장은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서기 41-54)에 확장되고 네로 황제 때(서기 54-68)에 2층의 무대가 지어졌고 2세기 중기 3층이 올려졌다. 2만5천여 관객을 수용할수 있는 극장의 놀라운 좌석 배치 기술로 끝자리 까지 무대의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수 있고 볼수 있도록 하였다.

성서의 이야기에는 소동으로 군중들이 극장으로 향했지만 바울은 친구들로부터 극장으로 들어가지 말기를 권유받았다. 그러나 이 원형극장에 바울이 들어갔던 역사적 증거는 없고 당시 이 극장은 건축중이었으니 다른 장소일 것이다.

한켠에 있는 박물관Ephesus Experience Museum에서는 1세기 당시 영화롭던 에베소의 모습과 바울의 우상숭배 금지 설교로 생업에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은색장의 선동으로 기독교 신앙을 배척하는 집회가 열려 외쳤던 아테미 신상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행19:21-41).

 

달의 여신 아르테미의 신전Temple of Artemis 은 청동기 이오니아인이 그리스에 이주하기 전 리디아인Lydians과 레레게인Leleges들에 의해 세워졌고 홍수에 의해 파괴되었던 신전을  BC 550년에 재건했다. 이것이 방화로 소실되자 알렉산더 대왕 사후 BC 323년에 길이 137m, 넓이 69m, 높이 18m에 127개의 열주(기둥)로 지어져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알려졌다. 서기 268년 고트족의 침략으로 신전은 파괴되었고 현재 기둥 하나만을 복원해 이곳이 신전터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멀리 뒤로는 성 요한교회Basilica of St. John 터가 보이는데 요한은 예수의 부탁으로 마리아를 모시고 서기 38년에서 47사이 에베소에와 정착했다고 한다. 도미티안 황제때 요한은 8년간 밧모 섬으로 피난을 갔고 후에 돌아와 요한복음을 집필했다. 그의 나이 98세에 트라얀 황제 치하에서 순교를 당하고 거기 묻혔는데 이 아야술룩Ayasuluk 언덕에 작은 교회가 2세기경 헌정되었다. 당시 콘스탄티노플, 현재의 이스탄불에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소피아 하기아Hagia Sophia의 건축을 명령했던 황제 저스티니안Justinian의 주도로 서기 565년에  성 요한교회가 아나톨리Anatoli 지역에서 두번째로 큰 교회로 완공되었다. 14세기 셀주크 투르크Seljuk Turks의 침략으로 잠시 모스크로 사용되었다가 15세기초 몽골의 침략으로 파괴되었다.

많은 상인들이 복원한 신전의 모습이 담긴 책자를 판매하고 있었다.

끝 사진은 마리아가 마지막으로 거쳐했다는 마리아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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