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25. 22:55ㆍTravel/한국여행
조선의 궁궐
경복궁 방문
경복궁의 남쪽 정문, 광화문은 파수들의 수문 교대의식이 열린다. 안쪽에는 근정전에서 관악산을 향해 바라다보면 일렬로 서있는 모습인데 조선의 왕들을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라를 다스리도록 되어 있었다. 근정전을 향해 가는 길은 왕의 길, 어도인데 박석으로 거칠게 꾸며진 길이 울퉁불퉁하다. 가죽신을 신은 왕이 미끄러지지 않게도 해 주고 비가 오면 자연스레 물이 배수가 될 수 있도록 했으며 오래 야외 행사를 할 경우도 햇빛의 반사가 적어 눈부심으로 인하 피로를 줄이는 목적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는 왕이 자리하는 어좌가 있고 그뒤를 일월오봉도 병풍이 지키고 있다. 그 이름은 해와 달, 5개의 봉우리, 소나무, 폭포, 파도 등이 그려져 있기 때문인데 어좌 뒤에는 항상 이 병풍이 펼쳐져 있어 왕의 권위를 나타내고 있으며 왕이 근정전에 올 땐 뒷문으로 들어와 병풍의 문을 열고 나오셨다고 한다.
경복궁은 임진왜란때 불탄 채로 그대로 있다가 흥선 대원군 때가 돼서야 재건되었다. 밖에서 보면 근정전은 2층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1층인데 어좌의 위쪽 천장에 2마리의 용이 있다. 특이하게도 용의 발톱이 7개로 발톱이 5개인 중국 황제의 상징 5 조룡보다 더 많은 발톱을 가져 조선의 자주와 자존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근정전 서쪽으로는 경회루가 있다. 중고 시절 경회루 앞에서 사생대회를 하곤 했는데 그 경회루는 덕수궁 안에 있던 것이고 이는 경복궁에서 사신들을 맞거나 연회를 여는 장소였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국악 연주가 있었는데 미리 예약을 해야 참석할수 있다.
창덕궁
창경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숙장문, 그리고 인정문을 지나면 왕의 집무실인 인정전이 모인다. 경복궁의 근정정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는 왕의 어좌가 있고 대한제국의 황제들까지 실제로 근무하던 곳이다. 태종에 의해 경복궁의 동쪽에 두번째로 지어진 연유로 동궐이라 불리던 창경궁 역시 임진왜란으로 불에 탔지만 선조에 의해 재건이 준비되고 광해군에 의해 주요 전각이 거의 복구되었다. 창덕궁에서 역대의 왕들이 정무를 보면서 조선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왕들이 거처한 궁궐이다.
인정문(仁政門)을 통해 인정전 마당으로 들어서면 세 단의 월대 위에 서 있는 인정전(仁政殿)이 보인다. 이는 궁궐에서 으뜸되는 건물로 궁궐의 권위를 나타내는 동시에 의식을 치르는 공간이었으므로 외관이 주는 상징성에 초점이 맞추어 크고 높고 화려하게 지었다.
일제 강점기 돈화문 앞으로 도로를 내며 종묘와 창덕궁이 분리되고 주요 전각외의 여러 건물들이 대부분 헐리는 비극적 역사를 맞았다. 1912년부터 창덕궁 후원과 낙선재 등이 창경궁과 함께 일반에 공개되었다. 1990년대 이후 복원 작업이 진행되기 시작했고 1997년에 조형미와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내부에는 어좌를 조금 높이고 대한제국 시절 창호지 문 위에 유리를 댄 창과 내부등이 설치되기도 했다.
창덕궁 안에는 약방 등의 시설과 함께 규장각 등 서고가 함께 있다.
창경궁
창경궁은 원래 1418년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수강궁(壽康宮, 태종이 세종에게 선위한 뒤 거처한 궁)이 있던 곳이다. 성종 때에는 정전인 명정전(明政殿), 편전인 문정전(文政殿), 침전인 수령전(壽寧殿), 그리고 환경전(歡慶殿), 경춘전(景春殿), 인양전(仁陽殿), 통명전(通明殿), 양화당(養和堂), 여휘당(麗暉堂), 사성각(思誠閣) 등이 건립되었으며, 궁의 둘레는 4,325척이었다.
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이다. 대한민국 국보 제2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전은 성종 15년(1484년)에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광해군 8년(1616년)에 중건한 건물로 현존하는 조선시대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2단의 월대 위에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지어, 중층인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정전보다 격식이 낮다. 특이한 점으로는 건물 뒤쪽에 퇴칸 형식의 월랑을 두고 있으며, 건물 내부의 앞쪽으로 고주를 세우고 뒷부분 기둥은 모두 생략하였고, 정면 양 협칸의 벽면 하부를 전복 돌로 쌓아 점을 들 수 있다. 명정전은 뒤쪽 터가 높게 경사져 있어, 뒤를 제외한 세 면에만 경사지에 맞추어 월대를 조성하였고, 좌향도 지세에 흐름을 맞추었기 때문에 정문인 명정문의 중심과 축이 일치하지 않는다.
서울의 한옥 마을
넓은 의미의 한옥은 초가집, 너와집, 기와집 등 한국의 전통 건축물들을 포괄하지만 대중적 의미의 한옥은 기와집만을 의미하게 되었고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북촌 마을은 대표적 한옥 집성지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유홍준 교수에 의하면 이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는 때 개발에 의해 작은 땅에 촘촘히 지어진 건물들이라고 한다.
북촌과 익선동
북촌 마을
북촌 한옥 마을은 안국역에서 북쪽으로 재동을 지나 가회동과 계동, 서북으로 삼청동을 포함한다.
북촌로 11길에서 남산을 바라보며 찍는 길이 가장 유명한 포토존이다.
아래는 계동길에서.
익선동
북촌 마을이 선비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마을이라면 익선동은 좀 더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인지 가장 늦게 각광을 받는 곳이라 지금은 아주 젊은 이들이 많이 찾는 그들만의 힙한 장소이다.
다양한 한옥들과 내부
이번 여행은 가이드 안내가 없는 여행을 하다 보니 건물들이 주로 중심이 되었고 사대문 안 한국이라는 특성 때문에 궁궐과 한옥들을 방문하면서 한국인들의 삶과 건축 생활양식 등을 살펴보게 되었다. 건축은 환경, 특히 기후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더운 환경을 지내기 위해 온돌과 창이 발달한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현대 건물에 비해 보온과 보냉 호율이 많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대가족이 함께 모여 살기 좋게 소통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특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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